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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리산 칠선계곡 10년만의 개방!

토박이 이흥우 2008. 9. 20. 10:38
지리산 칠선계곡 10년만의 개방!
한 순간도 끊이지 않은 절경 암반ㆍ소와 담의 연속
백무동~하동바위~장터목대피소~천왕봉~칠선골~추성동 25km 답사

지리산 칠선계곡이 10년만에 다시 열렸다. 칠선계곡 하류의 추성리 어느 주민이 ‘이제 겨우 바늘구멍 뚫린 정도’라고 했듯, 비록 전면 개방이 아니라 주 2회 왕복의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로부터 시작해 차차 개방의 폭은 넓어질 것이다.

칠선계곡 전 구간을 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아슴하다. 늦가을이었고, 천왕봉을 출발한 시각이 이미 오후 2시로 늦어져 칠선골 하산을 마칠 즈음은 이미 캄캄해져서였다. 때문에 칠선골의 진면목을 보았다기엔 한참 미흡했던 당시의 산행이다.


▲ 칠선계곡의 대표적 폭포인 칠선폭포.
그러나 아침 7시경 천왕봉을 출발, 환한 시간대에 느긋이 여유를 갖고 내려온 이번의 칠선골 산행이었어도 여전히 “반도 못 본 것”이라 말하고 싶다. 하산 중 길이 계곡가로 다가들 때마다, 그것이 암반이든 아니면 크고 작은 바윗덩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든 언제나 발길을 붙잡는 일품의 풍광이었다.

흡사 일부러 경치 좋은 곳으로만 길을 연결해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때문에 등산로에서 뵈지 않는 곳들의 경치가 갑자기 궁금해져, 작심하고 1시간쯤 계곡 암반만 따라 내려가 보았다. 여느 계곡들은 대개 경치가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1시간 내내, 칠선골은 한 순간도 끊이지 않는 절경의 연속으로 우리를 매혹케 했다. 특정 구간을 골라서가 아니라 무작위로 시작한 그 1시간 동안의 계류만을 따르는 탐승으로 우리는 칠선골 전구간의 풍치가 특A급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잔설이 간혹 얼룩처럼 남아 있고 산비탈은 칙칙한 갈색 일변도인, 연중 가장 경치가 신통치 못한 시기의 감흥이 그러했으니 5월 이후 신록으로 성장한 칠선골은 기가 막히지 않겠나 싶다.

▲ 백무동에서 장터목 오름길 중간의 대숲지대.
1박2일 산행으로 천왕일출까지 욕심 내

칠선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이며,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가 있다고 한다. 10여 년만의 이 칠선골 탐승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천왕일출까지도 욕심을 내고 등행 아닌 하행으로, 백무동~하동바위~장터목대피소~천왕봉~칠선골~추성동의 순으로 길을 결정했다. 취재엔 아무래도 가외의 시간이 더 필요하기에 하산하며 시간을 절약할 필요도 있었다. 백무동과 추성동은 능선자락 하나 건너이니 차량을 가지러 가기도 편하다.

새벽 일찍 서울을 출발한 덕에 백무동에 정오경 다다라 산채백반을 맛있게 들고 길을 나섰다. 이구 사장(자이언트트레킹 대표ㆍ거인산악회 총대장)은 말띠들 모임인 말오름산악회 중에도 54년생 준족들로만 엄선해왔다면서 김대윤, 김옥희, 전순주씨 세 사람을 소개한다. 등산로 점검차 나선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의 김종희 팀장 일행도 만나 칠선골 산행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백무동은 몇 년 새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 과거의 그 깊은 산촌 분위기는 간 곳 없고 서울 근교의 관광지처럼 알프스풍으로 단장한 펜션들이 길 양쪽에 늘어섰다. 국립공원 탐방안내소를 지나자마자 맨 마지막 집 모퉁이에서 왼쪽 산록을 향해 백무동길이 시작되고 있다. 곧장 뻗은 넓은 길은 세석대피소로 이어지는 한신계곡 길이다.

작년부터 중산리~장터목~천왕봉, 백무동~장터목~천왕봉 길은 연중 개방되었고, 토요일 오후임에도 우리 일행 이외엔 장터목을 향해 오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오늘 4월5일 밤부터 흐려져서 내일은 비가 올 것이란 일기예보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지리산 관리사무소 김종희 팀장의 “장터목대피소 예약자들이 어제 갑자기 무더기로 취소했더라”는 말로 미루어보아도 그렇다.

▲ 장터목대피소 옆 식탁에 앉아 노을을 즐기고 있는 등산객들.
이미 오후 2시지만 요즈음은 오후 7시까지 훤한 때이니 서둘 것 없다. 대피소 담요를 빌려 쓸 요량으로 침낭도 없이 배낭을 꾸린 데다 무거운 먹을 거리는 힘이 장사인 홍장천씨(자이언트트레킹 이사)에게 훌 몰아주고나니 나머지 일행들은 배낭이 당일산행용처럼 홀가분하다.

백무동 길은 거림골과 더불어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가장 편하고도 우아한 길이 아닌가 싶다. 서서히 뜸을 들이다가 잠시 힘을 쓰면 곧 고전적 분위기의 거대한 장산 능선으로 올라서며, 그 후 절로 유유자적하는 걸음걸이로 걷게 된다. 오로지 천왕봉을 향해 애걸복걸 매달리듯 해야 하는 급경사의 법계사 코스나 유암폭포계곡 길과는 사뭇 기품이 다르다.

10여 년 전 녹음이 무성했을 시기에 이 하동바위 길을 감탄과 더불어 오른 적이 있다. 숲 짙은 능선은 대개 공기가 잘 소통되지 않아 답답하기 마련이지만 이 하동바위 길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기 노출이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숲이 짙기는 해도 수목들 사이의 공간에 잡목이 없고 시원스레 트여 있어 항상 서늘한 바람이 스쳐갔다. 거대 산릉의 북사면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직 새순 한 점 돋지 않은 이 4월 초에도 하동바위 길은 숲이 짙다는 느낌이 여실할 만큼 연회색의 굵은 수목들로 가득하다.
 
 
“일요일부터 비”예보에 장터목대피소 한산

한국의 대표 국립공원의 주등산로답게 길은 잘 다듬어져 있다. 계단 설치를 가능한 한 피하고 보도블럭 깔듯 평평하게 돌길을 깔아두어 걸음걸이도 편하다. 오른쪽 옆으로는 백무동계곡의 한 지류를 이루는 골짜기가 따르고 있다. 건조기임에도 물줄기가 제법 굵다.

▲ 칠선골 맑은 계류 옆으로 내려서본 취재팀. (왼쪽) / 칠선골 상류에서 만난 주목. (오른쪽)
출발 1시간쯤 뒤 하동바위에 다다랐다. 높이 10m쯤 되는 바위벽 중간에 작은 나무가 뿌리박고 있기도 하다. 함양군 마천면 구역임에도 하동바위라 이름 붙인 것은 하동군수가 지리산 구경을 왔다가 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94년 마천애향회가 발행한 <마천향토지(馬川鄕土誌)>에 그런 내력이 전한다.

능선으로 붙기 직전의 참샘터는 거리상 백무동~장터목 간 2분의 1 지점으로, 널찍한 너덜겅과 숲그늘에 샘까지 갖춘 멋진 휴식터다. 이곳 또한 10여 년 전과 놀랄만큼 달라져 있다. 그때는 음식 썩는 냄새와 지린내로 물 마시기가 꺼려질 정도였는데, 지금은 꽁초 하나 뵈지 않는 말끔한 모습이다.

능선에 오른 직후 소지봉이란 간판이 선 봉을 지났다. 소지봉이란 종이를 태우는 봉이란 뜻으로, 백무동계곡의 백무(百巫), 곧 많은 무당들이 제를 지낸 뒤 소지하던 곳이라고들 말하나 백무동의 한자표기는 ‘白武洞’이니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 칠선계곡의 옥색 담과 폭포. 곳곳에서 이런 맑고 깨끗한 분위기의 풍경을 만났다.
그런데, 고산 능선의 대기가 이렇듯 조용할 수 있을까. 지난 겨울 내내 바싹 마를 대로 말라 새털처럼 가벼워졌을 단풍나무 잎새들조차도 고착제를 뿌린 듯 미동도 없다. 딱따그르르르르… 하는 딱다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피부에 떨림으로 와닿는다. 반야봉의 두 불룩한 엉덩이 같은 실루엣이 눈에 드는 바위 쉼터에서 한참 쉬다가 코앞인 듯 바라뵈는 장터목대피소로 향했다.

아까 백무동서는 무덥더니 이곳 해발 1,600m대를 넘어서는 장터목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느껴진다. 대피소 옆 휴식처 식탁에서 홍장천씨가 땀 흘려 지고 올라온 삼겹살 구이에 소주와 붉은 노을 풍경을 곁들인, 더 바랄 것 없이 만족스런 만찬을 끝내고 대피소에 들었다.

▲ 칠선골 최상단의 잔설 지대를 내려오고 있는 취재팀. (왼쪽) / 곳곳에서 나타나는 칠선골 와폭 중 하나. (오른쪽)
초만원일 줄 알았던 대피소 투숙객은 고작 30여 명이나 될까. 엉터리 일기예보 덕에 여유롭게 산장의 밤을 보낸 뒤 새벽녘 천왕봉으로 향했다. 제석단 고사목 지대를 지날 무렵 랜턴을 꺼도 될 만큼 날이 훤해진다. 두텁고 단단한 빙판길을 이룬 통천문을 지날 즈음 “글렀어요. 구름이 가렸어요.”하며 몇몇 등산객이 내려온다. 그러나, 말끔한 일출이 아니면 어떤가. 해발 1,915m의 천왕봉 정상에서 수많은 산릉들이 겹을 이룬 실루엣 풍경은 언제 어떤 날씨에 보아도 아름답다.


마폭포부터 절경 암반과 소ㆍ담 이어져

장터목쪽으로 100m쯤 되돌아가, 아직은 출입금지 팻말이 선 칠선계곡 입구 앞에 섰다. 힐끔 넘겨다본 칠선골 상단은 북사면이라 눈이 허옇게 덮였고 툭 내리지른 듯한 급경사다. 다들 아이젠을 착용하고 다소 긴장, 흥분된 상태로 골로 내려섰다. 아이젠뿐 아니라 스패츠도 착용해야 할 만큼 칠선골 상류부는 눈이 깊었다. 이미 봄기운이 무르녹는 시절에 맛보는 깊은 눈은  신선했다.

▲ 칠선골 지류의 얼어붙었던 빙폭이 물줄기에 아랫부분이 녹아내렸다. 해빙기에나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공단 직원들 말을 빌면, 6.25나 빨치산 토벌 때도 칠선골 상류부는 거의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60년대의 그 무지막지한 남벌기에도 칠선골은 초입부만 좀 피해를 입었을 뿐이라고 한다. 덕분인지 칠선골로 내려서자마자 우리는 하나마다 표찰을 붙여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게 큰 주목 거목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 잔설 지대를 벗어나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칠선골 하산을 시작한 지 1시간30분 남짓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해발고도가 200m쯤 낮아지며 길에서 눈과 얼음은 사라졌고, 얼마 후 바람 소리에 세찬 계류 소리가 섞여들었다. 마폭포였다.

마폭포는 상하 2단으로 이루어진 폭포로, 중간의 암반지대가 좋아 거기서 아침식사를 한 뒤 길을 이었다. 일부러 떼어내기라도 한 듯 칠선골엔 리본이 뵈질 않았다. 또한 최상류부의 급경사 구간에 놓인 쇠사다리 이외, 인공 시설물은 거의 뵈질 않는다. 때문에 계류를 건너 길이 이어질 때 주의를 집중해야 했다.
 
하류에서 상류쪽으로 올라갈 경우는 더욱 헷갈릴 것이다. 실제로 칠선골에서는 휴식년제로 통제 중일 때도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조난한 사례가 여러 건 있다. 다만 칠선골에도 공단과 소방방재청이 공동 설치한 다목적표지판들이 있어 대강의 위치를 알 수 있다. 500m마다 하나씩 설치했으므로 예를 들어 17번 표지판은 칠선골 입구로부터 8.5km 상류 지점을 의미한다.

▲ 이끼 낀 고사목으로 원시적 분위기인 칠선골.
이끼가 융단처럼 뒤덮인 암반과 고사목으로 인도하던 칠선골은 하류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며 일부러 닦아내기라도 한 듯 깨끗한 바윗덩이들과 암반, 와폭 계류로 풍광을 바꾸어갔다. 옥색 물이 맴도는 담이 세 개, 네 개 연이어지는 절경은 여느 산에서는 보석 같은 절경으로 칭송될 터이지만, 이곳 칠선골에선 ‘널린’ 풍경이었다. 담+담+담이나 담+와폭+담은 기본이었다. 계곡은 시원스레 넓었고, 울창한 원시의 숲이 밝은 암반지대 바깥의 산록을 그득 채웠다. 눈석임물들이 합수해서인지 수량도 여름철인 듯 풍부하게 계곡은 살아나 있었다.

천왕봉에서부터 4km 아래의 ‘갈림길. 천왕봉 4km, 추성리 5.7km’팻말이 선 곳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오른쪽 계곡 저 안에 뵈는 허연 물줄기를 향해 들어갔다. 폭포로선 칠선골을 대표한다고 할 대륙폭포다. 허연 물줄기가 30여m 검은 암벽 위를 흘러내리고 있는 풍경이 그런대로 볼만했다.

안내판대로라면 아직 추성동까지 백무동 코스의 길이와 비슷한 5.7km(GPS로 체크한 길이는 약 8km)가 남았다. 여느 산의 지루한 계곡 같으면 지겨워할 일이지만, 이곳 칠선골에서는 달랐다. 아직 탐승할 절경 계곡이 그만큼이나 길게 남았다는 사실에 일행은 느꺼워했다.

▲ 신새벽길을 걸어 천왕봉 일출을 향해 제석단을 지나고 있는 취재팀. (왼쪽) / 칠선골 상류의 밧줄이 설치된 곳을 지나는 취재팀. (오른쪽)
폭포 풍치는 그 아래 300여m 떨어진 곳에서 만난 칠선폭포가 단연 으뜸이다. 폭포 위의 암반지대로 나서서 물줄기가 아래쪽 넓고 푸른 소로 세차게 내리꽂히는 풍경이 아래쪽에서 보는 것보다 한결 낫다. 하지만 결코 대륙폭포나 칠선폭포가 칠선골의 대표나 상징이 될 수는 없다. 그 폭포들을 비롯해 옥빛 소와 담과 다듬은 듯 매끄럽거나 우아한 굴곡미를 가진 암반, 그리고 그 옆에 우거진 숲까지를 포함한 모든 요소가 조합된 풍경이 아니라면 칠선골의 진면목이라 말할 수 없다.

하류 4km 구간은 산중턱 가로지르는 지루한 길

계류 암반만을 따르거나 아니면 폭포나 담을 위와 아래에서 요모조모 뜯어보며 가는 걸음은 한정없이 느려져서, 천왕봉을 떠난 지 7시간쯤 뒤인 오후 2시경에야 칠선골의 절반 지점인 ‘통제데크’에 내려섰다. 통제데크는 그간 등산객들이 오를 수 있었던 최상류 지점의 목제데크 전망대다.

길게 남았다고 좋아했건만, 칠선골 절경 탐승은 다소 빨리 끝나버렸다. 통제데크 이후로도 한동안, 넓은 진초록 물빛의 옥녀탕에 이르기까지 절경이 이어졌지만 행목교로 골짜기를 건넌 다음 길은 계곡과 아마득히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 단 한 번 골짜기를 건널 때 시원한 계류를 보았을 뿐, 추성리 마을에 이르기까지 약 4km 구간은 산중턱을 가로지르는 지루한 길이었다. 길은 두지터 마을을 지나 추성리 마을로 바로 떨어져, 칠선골에서 손꼽히는 경승인 용소도 못 보고 지나치게 돼 있다. 이곳 하류 구간도 계곡 바로 옆을 따르게끔 길을 내주면 사람들이 훨씬 더 고마워할 것이다.

두지터는 세상과 산 중간지점에 교묘히 걸쳐져 있는 옛 화전민 마을이다. 집은 모두 10여 호 될까. 11가구가 주민등록이 돼 있으나 연중 생활하는 집은 5가구쯤 된다고 한다. 서각과 녹차(백초차) 전문가인 문상희씨, 지리산이 좋아 10년째 지리산중에 들어와 사는 김성언씨 등 면면이 남다른 이들이 주로 여기 산다.

마을 아래 500m 능선 머리까지 나가자 찻길이 들어와 있다. 저 아래 추성리 마을이 보였다. 보도블럭을 깐,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한 좁은 찻길을 터덜터덜 걸어 추성동 마을에 내려서서 칠선골쪽을 되돌아보았다. 군데군데 검은 침엽수림이 얼룩지듯한, 저 멋없는 갈색 일변도의 산릉 어디에 그렇듯 우리를 매혹케 한 절경 계곡이 있는 것인지 잠시 어리둥절했다.
 
 
마천사람
노래하는 심진 스님

칠선계곡 들목인 마천면 마천초교 뒤편 남향한 산록, 보물 제375호 마애여래입상이 천왕봉을 향하고 선 고찰 고담사(古潭寺)의 주지 심진(尋眞) 스님은 ‘노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하는 가사의 심진 스님의 노래는 드라마 야망의 주제곡으로 쓰이며 대한민국 사람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의 주제곡이 되기 전부터 이 노래는 애창되었다. 잡다한 세상만사를 모두 털어버리라는 뜻이자 듣노라면 실제로 훨훨 벗어던져버리는 듯한 호쾌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심진 스님은 89년부터 노래하기 시작, 그간 3집까지 냈다. 15년간 3집이니 결코 많은 노래는 아니지만 거저 나누어준 것 20만 장 이외, 팔린 것만 60만 장이나 된다. 순수 불교음악은 아니지만 불자 특유의 탈속한 듯한 음색과 가사, 곡조가 어필한 것이다. 매니저도 후원자도 없이 시디 재킷 디자인까지 스님이 직접 했다.

심진 스님은 성악이 아니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노래에 취미와 소질이 있어 부처님과 중생을 위한 ‘소리 공양’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음반을 냈다고 한다. “흘러가는 물도 떠줘야 공덕이 있다고 했듯, 허공을 흐르는 소리를 떠담아 노래라는 형식으로 공양하는 것”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심진 스님은 원래 이곳 마천초교를 졸업한 토박이다. 여러 사찰을 돌다가 이제 고향땅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고담사 마애불상 앞에 서면 천왕봉을 중심으로 좌로 중봉과 하봉 능선이, 우로는 제석봉 능선이 펼쳐진 지리산릉이 학 날개인 듯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러니 매일 절로 노래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이제 그만 멈출 것이라 스님은 말한다.


설화
추성동·두지터에 전하는 왕의 전설

이곳 추성동이나 두지터엔 지명들로 엮어진 전설이 전한다. 두지터란 뒤주, 곧 식량저장고를 말하며, 용소에서 갈라지는 칠선골의 한 지류인 국골은 어느 한 나라의 왕이 있었던 곳이기에 국골이며, 계곡 중간에는 말달린터란 넓은 터도 있다고 한다.

칠선골 동쪽 촛대봉 능선 200여m 아래 대궐터라 부르는 곳엔 기왓장이며 성곽의 흔적이 여실하게 남아 있다고도 한다. 이를 가야국 구형왕이나 후백제의 견훤과 연계시킨 전설이 전하는 것이다. 저 건너 광점동 어름터는 식품을 냉장 보관하던 곳이라고까지 비약하기도 한다. 89년 간행된 함양군지에 보면 이와 연관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추성산성지(楸城山城址) : 마천면 추성리 산 93번지에 위치한 성지로서 축성연대는 미상이나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할 때 가락국의 양왕(讓王)이 군마를 이끌고 이곳 추성산성에 들어와 군마를 훈련시켰으며 피난처로 이용했다고 하며, 현재 남아 있는 주위에는 약 1km 길이에 면적은 42.9ha(1,300평) 정도이며, 그 내부에는 높이 10m의 망석(望石)이 있다.’

이런 기록과 설이 전하므로 한 번 정밀조사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역사적 사실이 증명될 경우 칠선골 탐승에 한 가지 깊은 의미를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산행길잡이

5월1일부터 주 2회 천왕봉까지 가이드제로 왕복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소장 김성수)에 따르면 칠선계곡은 지리산 8개소 등 총 59개소의 국립공원 내 특별보호구 중 하나로, 이 특별보호구가 개방되기는 최초라고 한다. 개방을 허용하기가 그만큼 까다로웠다는 뜻이겠다.

칠선계곡은 봄ㆍ가을로 주 4회에 한해 제한적으로 개방된다. 5월1일~6월30일, 9월1일~10월31일 넉 달동안 주 4회 통행을 허용하되, 월·목요일은 천왕봉쪽으로 등행만, 화·금요일은 천왕봉에서 추성리쪽으로 하행만 허용한다. 칠선계곡으로 올라 다른 코스로 하산하거나, 다른 코스를 통해 천왕봉에 올랐다가 칠선계곡으로 하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 서암 입구의 사천왕상- 벽송사 서쪽 옆에 있는 암자로 굴법당 안에 화엄경의 진리를 새겨둔 곳이다. 82년 전국기능경진대회 석공예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조각가가 10년동안 부인도 자녀도 찾아오지 못하게 하고, 술담배도 금하는 등 구도자적 자세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조각했다고 한다.
인원은 1일 1회 40명(연간 1,000여 명)으로 제한하며, 반드시 추성리 주민을 가이드로 한 명이 동행해야 한다. 가이드 비용은 받지 않는다. 주민 가이드는 주민 중 47세 이하의 남성 8명을 곧 선발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공단으로부터 월 140여만 원의 보수를 받는다. 이들의 보수만 따져도 연간 약 1억 원이 되므로 칠선골 등산객은 1인당 약 10만 원의 호사를 거저 누리는 셈이 된다.

4월15일부터 공단 홈페이지(http://www.knps.or.kr)를 통해 칠선계곡 등산을 원하는 이들의 예약을 받는다. 5월1일이 목요일이므로 이 날부터 칠선계곡 등행이 가능하다.

칠선계곡 탐승은 각자의 취향과 시간, 체력 등을 두루 감안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계곡은 위로 올라가면서 줄곧 갈래가 지므로 지류로 잘못 들어설 위험이 높다. 그러므로 초행인 계곡은 위에서 아래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칠선골은 추성리 주민 가이드의 동행이 전제되므로 길 잃을 염려는 없다고 보고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천왕봉을 향한 상행은 7~8시간에 걸쳐 꾸준히 오르막을 오를 수 있는 체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천왕봉에 오른 이후 장터목 대피소까지 내려갈 수 있는 여분의 힘까지도 감안해야 하므로 ‘약골’인 사람은 하행을 택하도록 한다.

칠선골 하행은 천왕일출을 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매력적이다. 일단 장터목대피소에 올라 하룻밤 잔 다음날 아침 일찍 천왕봉 정상에 올라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일출을 기다렸다가 아침 7시경 칠선골 하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첫날은 오르막 등행, 다음날은 내리막 하행’으로 체력 안배도 적당히 된다.

장터목대피소까지의 등행은 백무동이나 중산리쪽에서 출발할 경우 점심 먹고 산행을 시작해 5~6시간이면 되므로 서울 출발이라도 전체 일정을 1박2일만에 마칠 수도 있다. 백무동~장터목간은 GPS로 측정한 거리가 6.7km이니 실거리 약 8km쯤 될 것이다. 장터목~천왕봉은 2km 1시간, 천왕봉~칠선골~추성동은 GPS상 12.5km(실거리 15~16km)이므로 총 산행거리는 25km쯤 된다.
 
교통
서울→백무동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가 하루 7회 운행(지리산고속 전화 055-963-3745). 일반고속 08:20, 10:30, 13:20, 15:20, 17:30, 19:00(요금 19,800원), 심야우등 24:00(요금 21,700원). 4시간 소요.

백무동→서울  출발시각 07:20, 08:50, 11:30, 13:30, 14:50, 16:00, 18:00.
서울→함양  동서울터미널에서 하루 10회 운행(08:20 백무동, 10:30 백, 12:00, 13:20 백, 14:30, 15:20 백, 17:30 백, 19:00 백, 21:00, 24:00 백). 3시간 소요, 요금 16,400원(지리산고속 전화 055-963-3745). 남부터미널에서는 하루 5회 운행.

함양→백무동  시외버스터미널(055-963-3281)에서 인월 경유 버스가 하루 17회(07:00~18:30) 운행. 3,300원.
전주나 남원에서는 백무동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다. 

함양→추성동  시외버스터미널 앞 시내버스정류장에서 마천 경유 버스가 하루 16회 운행(06:30~18:30). 1시간 소요, 요금 3,300원.

추성리→함양  막차 오후 7시20분.

마천→서울
  동서울터미널행 막차 오후 6시.

함양→서울 
동서울터미널행 막차 오후 7시.
추성리로 들어갔다가 함양 갈 때는 마천을 지나지 않고 곧장 함양으로 나간다. 그러므로 추성에서 마천으로 나가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마천 개인택시 사무실 055-962-5110). 혹은 함양까지 나가서 서울행 버스로 갈아타도 된다. 마천 버스정류장 055-962-5017.


숙박
○장터목대피소  이용 예정일 보름 전부터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받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 http://www.knps.or.kr. 대피소 남쪽 50m 아래에 샘터가 있으며, 겨울 이외엔 수량이 넉넉한 편이다. 대개 새벽 4시경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가므로 저녁 8시에 소등한다. 초코파이(500원), 복숭아캔(3,000원) 등을 시중보다 조금 더 받고 판매한다. 모포 대여료 장당 1,000원. 대피소 바깥에 흡연구역이 따로 마련돼 있다.

○백무동  종점 주차장 근처에 옛고을가든 963-4037, 느티나무집 962-5345, 반달곰펜션 962-5252 등 음식점을 겸한 펜션형 민박집들이 10여 개소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백무동 탐방안내센터 055-962-5354.

▲ 추성리의 황토방민박집. (왼쪽) / 추성리 민박촌. (오른쪽)

 ○추성동  추성리에 민박집이 10여 호 있다. 그중 식당을 겸한 업소는 칠선휴게소(055-962-5494), 추성산장(962-2422), 칠선산장식당(962-5630), 동시봉씨집(963-8318), 그리고 황토를 쓴 말끔한 집인 초암황토방(964-2085) 등이 있다.


먹거리
지리산 북사면 들머리인 산내면과 마천면은 흑돼지로 유명하다. 마천면 소재지 일대에 흑돼지촌(055-962-6689), 월산식당(055-962-5025)  등 흑돼지 구이집이 즐비하다. 산내면 소재지에선 유정식당(063-636-8855), 황토식당(063-636-9985) 등이 유명.


▲ 칠선산장 나물정식.
추성동에는 지리산 자연산 나물을 주로 쓰는 칠선산장(055-962-5630)의 나물정식이 인기가 높아 멀리 함양읍내에서도 찾아든다. 추성동 제일 윗집인 허상옥씨의 칠선휴게소(962-5494)의 산채정식(7,000원)도 지리산에서 직접 채취, 삶아서 말려 갈무리한 산나물만 푸짐하게 쓰는 별미로 인기가 높다. 취재 갔을 때인 4월6일 마침 허상옥씨네에선 함지박 가득 희귀한 석이버섯을 다듬고 있었다. 추성리 일대의 예전 전답들이 이젠 모두 자연산 나물밭으로 변해 나물이 매우 풍부하다고 한다. 허씨네는 설탕을 먹인다는 둥의 시비를 피하기 위해 12월 최종 채취량은 각자 운에 맡기는 방식인 계약식 토종꿀 주문도 받는다(3되 정도에 20만 원).


/ 글 안중국 차장
  사진 허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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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그리움이 흐르는 강]
출처 : 천년그리움이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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