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상평산악회 아차산(295.7m)시산제(2019.03.03).
산행 일시 : 2019년 03월 03일.
산행한 곳 : 광진구 아차산(295.7m).
함께한 이 : 상평산악회원 18명.
▼ 아차산역 2번출구에서 아차산을 오르면 동의초등학교 옆 등산로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峨嵯山 표지석.
▼ 상평산악회 아차산 시산제 제물 진설 완료.
▼ 아차산 시산제 식전 행사를 주관 하시는 상평산악회 회장님.
▼ 상평산악회 회장께서 「2019년 시산제를 아차산에서 올리게 된 중요한 이유」를 설명 중 !.
아차산(295.7m,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서울의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고구려 유적의 보고(寶庫) 아차산은 해발 295.7m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연계해 있는 중랑구의 용마산(348m)과 함께 인근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40분 정도의 등산로를 오르면 한강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 지역과 용마봉 등의 광범위한 지역
모두 아차산(阿嵯山, 峨嵯山, 阿且山)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때 백제의 도읍이 한강 유역에 있을 때 우뚝 솟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이 아차산에 흙을 깎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아 올려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는 백제인의 노력이 있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 남쪽에 있는 풍납동 토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서 백제의 운명을 좌우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단성(阿旦城), 아차성(蛾嵯城), 장하성, 광장성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여 백제, 신라, 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장기간에 걸쳐 벌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시내에서는 해가 제일 먼저 뜨기 때문에 매년 새 희망(希望)을 염원하는 해맞이 행사를 하기 위해 시민들이 많이 찿는 곳 이기도하다
아차산(阿嵯山, 峨嵯山, 阿且山)의 유래
조선 명종(明宗) 때 복술가(卜術家) 홍계관(洪繼寬)이 어느날 자기 명(命)을 점쳐 보고는 아무 날에 횡사(橫死)할 것이라는 점괘가 나오자 살아날 길을 찾아보니 임금이 계시는 용상(龍床) 아래 숨어 있으면 횡사를 면한다는 점괘가 나오자 홍계관은 왕에게 아뢰어 승낙을 받고 용상 아래 숨어 있었다.
그때 쥐 한 마리가 마당을 지나가자 明宗 임금은 홍계관에게 「지나가는 쥐가 몇 마리인지 점쳐 보라 !.」 하자 홍계관은 「세 마리입니다 !.」 하니 明宗 임금은 이 말을 듣고 크게 怒하여 홍계관의 목을 베라 하였다.
이에 홍계관이 형장(刑場)으로 끌려 나가 급히 점을 쳐보니 「한 시간 정도만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점괘가 나와 刑吏에게 刑 집행을 조금만 늦추어 달라고 사정하자 刑吏가 잠시 기다려 주게 되었다.
한편 홍계관을 형장으로 끌고 가게 한 임금은 그 쥐를 잡아 배를 갈라 보게 하자 뱃속에는 두 마리의 새끼가 들어 있었다.
홍계관의 신기한 점술에 놀란 왕은 급히 신하를 형장으로 보내어 刑을 중지시키게 하였다.
신하가 급히 달려가 형장이 멀리 보이자 「형 집행을 중지하라 !.」고 소리쳤으나 잘 들리지 않는 듯 하여 손을 흔들며 「刑을 중지하라 !.」는 표시를 하였으나 刑吏는 사형 집행을 빨리 하라는 신호로 오해하여 홍계관의 목을 베고 말았다.
신하가 왕에게 돌아와 결과를 아뢰자 임금이 「아차 늦었구나 !.」 하며 매우 안타까와 하였고 그후로 사람들은 이 형장이 있었던 고개를 ‘아차 고개’라 하였는데 그 고개가 곧 아차산(阿嵯山, 峨嵯山, 阿且山)이라는 것이다.
이 설화는 아차산의 이름이 이미 있은 후 산 이름과 연관하여 홍계관의 일화를 끌어 들여 믿음과 신의(信義)를 아쉬워 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고구려의 평강공주(平岡公主)와 온달(溫達) 장군의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로
고구려가 長壽王의 남진 정책으로 이 지역을 차지한 후 영양왕 때 평강공주의 남편이며 돌아간 평강왕(평원왕)의 사위인 溫達 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긴 이 지역을 비롯한 죽령(竹嶺) 이북의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곳 아차산의 산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戰死)하였는데 고구려군이 溫達 장군의 시신(屍身)을 평양으로 옮겨 가려 하였으나 장군의 한(恨)이 맺혔음인지 영구(靈柩)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에 아내인 평강공주가 평양으로부터 와서 관(棺)을 어루만지며 「사생(死生)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그만 평양으로 돌아 갑시다 !.」 하자 평강공주의 사랑의 힘이 棺을 움직여 평양으로 돌아가 장례를 무사히 치룰 수 있었다 한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 주민들은 「아차 ! 온달 장군이 이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구나 !.」라는 의미로 이곳을
아차산(阿嵯山, 峨嵯山, 阿且山)이라 불렀다고도 하나 물론 歷史적 사실은 아니다.
온달 장군이 전사한 이야기와 평강공주가 와서 달래어 돌아갔다는 것은 역사 기록(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장소는 아차산이 아니라 훨씬 남쪽인 충북 단양의 溫達山城이라는 것이 현재로서 설득력 있는 학설이기 때문이다.
[출처] 아차산의 유래와 홍계관|작성자 곡주
▼ 상평산악회 시산제 본 행사.
▼ 상평산악회 시산제 회장의 초헌례.
▼ 상평산악회 시산제 회장의 독축례.
▼ 상평산악회 시산제 회장의 독축례.
▼ 상평산악회 아차산 시산제 축문(祝文).
▼ 상평산악회 대장의 아헌례.
▼ 상평산악회 대장의 아헌례.
▼ 상평산악회 전임 회장의 종헌례.
▼ 상평산악회 초대 회장의 헌작례.
▼ 상평산악회 11기 회원들의 헌작례.
▼ 상평산악회 11기 회원들의 헌작례.
▼ 상평산악회 14,15기 회원들의 헌작례.
▼ 상평산악회 14,15기 회원들의 헌작례.
▼ 재경 감곡 면민회회장과 산악회장과 총무님의 헌작례.
▼ 재경 감곡 면민회회장과 산악회장과 총무님의 헌작례.
▼ 상평산악회 16기 회원들의 헌작례.
▼ 상평산악회 16기 회원들의 헌작례.
▼ 상평산악회 16기 회원들의 헌작례.
▼ 상평산악회 총무님의 마지막 종헌작례.
▼ 상평산악회 회장님의 음복례.
▼ 상평산악회 전 회원들의 음복의 시간.
▼ 상평산악회 전 회원들의 음복의 시간.
▼ 상평산악회 아차산 시산제를 모두 마치고 감곡면민회장의 건배.
▼ 상평산악회 전 회원들의 음식 나눔과 친교의 시간.
▼ 음식 나눔과 친교의 시간.
▼ 음식 나눔과 친교의 시간.
▼ 음식 나눔과 친교의 시간.
▼ 상평산악회 전 회원들이 아차산 시산제를 모두 마치고 인증 - 샷 !.
▼ 상평산악회 전 회원들이 아차산 시산제를 모두 마치고 인증 - 샷 !.
상평산악회 아차산 시산제에 참석해주신 18분 회원님들과
여러가지 연유로 함께하지 못한 회원님들의
2019년 한해 안전산행과
모든 회원들의 가정에도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 드리며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
토박이 이흥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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